역싸

사람들에게 살해 협박당하면서도 매년 '안중근 의사' 추모제 여는 일본인들이 있다

뭐싸남 2020. 8. 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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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구리하라시 대림사(大林寺, 다이린지)에서는 매년 9월 2일이면 특별한 의식이 거행된다.

9월 2일이 무슨 날인가. 바로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탄신일이다.

매년 이날이 되면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추도제가 열린다. 대림사의 주지 스님인 사이토 다이켄은 "일부 사람들은 왜 일본의 영웅을 사살한 테러리스트를 위해 제사를 지내냐며 비난한다"고 말한다.

그런 이들에게 사이토 다이켄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 그리고 지바 도시치를 위한 제사다. 둘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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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는 어떤 인연일까. 시계를 110년 전으로 돌려보자.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됐다. 이날 뤼순 감옥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안중근 의사를 존경했던 검사, 변호사, 감옥의 간수들도 모두 울었다.

그중에는 뤼순 감옥에서 간수로 근무하는 일본인 지바 도시치도 있었다. 

지바는 처음 안중근 의사를 만났을 때, 온몸이 분노의 화염으로 휩싸였다. "너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 의사만 보면 서늘한 총구를 겨누기도 했다. 총구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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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바를 보며 안중근 의사는 덤덤히 말했다. "당신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난 그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한 행동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신념과 고귀한 성품, 인성은 총구를 구부릴 만큼 단단했다. 특히 안중근 의사는 괴로워하는 지바를 위로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신념에 감동한 지바는 급기야 머리를 숙였다.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위협한 것은 정말 미안합니다. 일본인으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작은 부탁을 하나 했다. "한 폭의 글을 써주세요. 소중히 간직하고 싶습니다"

어느덧 1910년 3월 26일, 사형 집행일이 됐다. 안중근 의사는 형장으로 출발하기 전, 지바를 위해 글을 써 내려갔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그렇게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지바는 이 유묵을 고이 간직한 채 간수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찰 대림사를 건립했다.

이곳에서 지바는 매일 안중근 의사를 기리고 명복을 빌었다. 안중근 의사를 위한 기념비도 세웠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가보로 삼고, 그의 위패를 모셔라"는 유언도 남겼다. 이때부터 대림사의 안중근 의사 추도제가 시작됐다.

지바의 뜻을 이어받은 대림사의 사이토 다이켄 주지 스님은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지바 도시치의 마음을 일본인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어서입니다"라고 말했다.

"매년 안중근 의사의 추도제를 하면서..."

"그가 독립운동을 할 때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혹독함을 알게 되어 일본인으로서 슬픕니다"

 

"또 다른 지바 도시치가 일본에서 나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의미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한일관계에 관해서는 무엇을 해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음을 열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이토 다이켄은 대림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추도제를 여는 것은 물론이며, 우리나라 서울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추도식에도 참석했다. 이곳에서 지바 도시치와 같은 촉감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또 안중근 의사의 위대함, 그리고 일본인들이 잘 모르는 진실과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년이 넘도록 공부해 '내 마음의 안중근'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사이토 다이켄은 오늘도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역사뿐만이 아니다. 1910년 이전의 국제법까지 공부한다. 그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이 악물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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